[글로벌이코노믹] 2016. 10. 16
지난 주 포이동 M극장에서 공연된 『바람의 합주』(The Wind’s Ensemble)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젊은 예술가들, 문화예술기획 ‘소리 숲’ 주최로 우리소리연구회 ‘소리 숲’, ‘헤케이브 정은주 컴퍼니’가 한마음으로 우리나라의 전통국악과 서양 클래식 음악 그리고 무용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국제교류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기획된 공연이었다. 전통음악의 품안에서 그 깊이를 찾아가는 단체의 바람직한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소리를 선사하는 피리, 태평소, 해금과 함께 피아노, 바이올린, 바리톤, 드럼 그리고 강렬하면서도 절제된 무용의 몸짓으로 풀어낸 무대였다. 그들만의 향기롭고 신선한 바람을 그리는 8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준비된 『바람의 합주』 역시 퓨전이라 일컬어지는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진정한 소리와 몸짓을 찾아가는 무대였다.
이번 공연의 두 축은 ‘우리소리연구회 소리 숲’과 ‘헤케이브 정은주 컴퍼니’이다. ‘우리소리연구회 소리 숲’은 우리민족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조화로운 소리를 추구하는 모임으로 2015년 3월에 창단되었다. 소리 숲은 서양악기에 맞춰 작곡되거나 편곡되는 퓨전 음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음악의 품안에서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을 서양악기와의 합주를 통해 소리 숲만의 음악을 표현하고자 하는 단체이다.
‘헤케이브 정은주 컴퍼니’는 2013년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의 무용가이자 안무가 정은주에 의해 창단되었다. 헤케이브는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현대무용을 나비라는 이미지로 해석, 노란남방나비의 학명인 유레마 헤케이브(Eurema Hecabe)에서 그 명칭을 따온 것이다. 몸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는 ‘헤케이브 정은주 컴퍼니’는 특히 인간의 내면과 외면 그리고 안무에 사용되는 다양한 소품을 역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단체이다.
여덟 편의 작품은 1. 『모던 세븐』(Modern Seven, 무용) 2. 『수제천』(Sujecheon, Court Music) 3. 『오 나의 태양』(O sole mio, E. di Capua) 4. 종묘제례악 정대업지곡 중 『영관』(Yeonggwan, Royal Ancestral Ritual Music) 5.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 (F. Schubert, Der Lindenbaum in der Winterreise) 6.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Op. 19,M. Ravel) 7.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Piano Sonata No. 14 in C#minor, Op. 27-2(L. v. Beethoven) 8.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Opera Carmen, Toreador Song, G. Bizet, 무용)이다.
이들 작품에 대한 인상을 피력해본다. 주도하는 악기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며, 작품마다 변화하는 남녀 구성의 비율, 전통악기와 서양악기의 혼합, 악기와 춤의 만남, 극장 구조에 따른 집중과 몰입, 사물놀이악기를 배제한 전통악기 피리, 해금, 태평소를 사용한 협연, 곡목마다 조명이 투입되고, 곡배치 등 연출력이 돋보이고, 여유와 즐김으로써 관객과 하나가 된 공연이었다.
1. 『모던 세븐』
무용(김윤진, 한우열, 이진욱, 정동주), 드럼(최승현), 피리(김지윤)
『모던 세븐』은 강렬한 태평소 사운드를 바탕으로 드럼과 함께 경쾌한 춤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즉흥성이 강한 태평소의 시나위 선율과 드럼의 다양한 리듬비트, 여기에 스트리트댄스 장르인 얼반, 힙합, 왁킹이 현대무용과 접목, 역동적인 에너지를 풀어낸 작품이다. 전통음악을 흡수한 춤은 시선, 손동작, 스피드로 분위기를 압도하며 점프, 롤링으로 관심을 끌며, 남성 3인, 여성 1인의 4인무는 기본기에 충실하며, 질식시킬 듯한 젊음의 끼를 발산한다.
2. 『수제천』
바이올린(최정현), 피리(김지윤), 해금(이강산)
정악의 백미(白眉) 『수제천』, 원곡인 합주곡은 삼국시대 백제노래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궁중무용 반주로 쓰였다. 『수제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피리의 주선율이 멈춰질 때도 일부 악기가 쉼 없이 연주되어 마치 곡 전체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이번 공연에는 피리와 해금뿐 아니라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되며 서로의 선율을 주고받는 조화로움을 시도하였다. 순서대로 자리한 3악사는 중간 정도의 조명에 그윽한 궁중음악 연주로 동현(해금)과 서현(바이올린)의 만남이라는 신비감을 자아내며, 그 사이를 파고드는 피리 연주로 간절한 소원을 담아 청아하고도 애잔한 선율을 끌어내었다. 조명은 각 파트의 연주자가 주인공이 되게끔 하였고, 조명의 붉은 빛은 황홀에 이르게 만들었다.
3. 『오 나의 태양』
바리톤(김재일), 피리(김지윤), 피아노(임연주)
『오 솔레 미오』는 나폴리의 작곡가 디 카푸아(E. di Capua)에 의해 19세기 말 작곡된 곡이다. 나폴리 출신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목소리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되었으며 이번 공연에서는 한국의 전통악기인 피리 소리를 더해 감미로운 선율을 전한다. 피리가 선도하고 피아노가 기본 악기로 쓰인 이 작품은 피리의 존재 가치를 절대적으로 부각시킨다. 이태리어와 한국어로 번갈아 부른 김재일의 노래는 호박, 노랑, 보라색 조명의 도움을 받아 여유와 평정심을 보여준다. 피리악사와 가수가 완전한 호흡을 이룬 흥미로운 곡이었다.
4. 종묘제례악 ‘정대업지곡’ 중 『영관』
태평소(김지윤), 피아노(임연주), 해금(이강산)
종묘제례악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에 쓰이던 음악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왕들의 무공을 찬양하는 ‘정대업지곡’ 중 『영관』 이 연주되었다. 전통악기 이외에 피아노의 선율을 더해 서양악기가 우리나라의 궁중음악에서 어떻게 조화로움을 줄 수 있는지 느껴볼 수 있다. 이번 곡에도 조명은 연기자가 되어 세 악사를 비추며, 장중과 품격을 보조하며, 연주 악기의 장점을 골고루 보여준다. 정은주 연출의 세심한 배려가 도처에 깔려있음을 인지시켜주었고, 국악의 고품격화의 기본을 보여주었다.
5.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
바리톤(김재일), 피아노(임연주), 해금(이강산)
『보리수』는 1927년에 작곡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24곡 중 5번째 곡이다. 연가곡의 배경은 눈 덮인 겨울의 황량한 벌판과 매섭게 불어오는 북풍, 얼어붙은 시냇물, 잎이 다 떨어진 채 서 있는 나무 등이다. 현제명 작곡의 ‘그집앞’ 독일판이다. 지나간 사랑의 자취를 보리수에 담아 표현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곡이다. 이강산의 해금이 아리게 심연의 슬픔을 연주해내면 격정으로 덜려드는 피아노가 달려오고 하이키라이트의 도움을 받아 바리톤 김재일은 리트(Lied)의 매력을 발산한다. 민요풍의 노래의 의미를 따라 듣다보면, 진한 사랑의 여진을 만날 수 있다. 그 쓸쓸한 방황, 미세한 떨림으로 다가오는 감정을 연기해내는 김재일은 저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완벽한 연주와 작은 공간에서 퍼져 나오는 노래는 진한 감동을 연출한다.
6.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바이올린(최정현), 피리(김지윤), 피아노(임연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1889년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 작곡가 라벨이 17세기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에서 영감 받아 작곡되었다. 피아노곡으로 작곡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노, 바이올린과 전통악기 피리를 더해 여인 삼중주로 연주되었다. 바닥조명은 심리묘사를 이끌어 내고, 가을의 서정으로 번진 연주는 기교와 화려함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평범한 멜로디와 완벽한 고전주의적 화성으로 현실에서 유리된 듯한 몽환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7.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피리(김지윤), 피아노(임연주), 해금(이강산)
『월광 소나타』는 고요하면서 단순미와 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곡으로 자유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피아노 선율에 더해진 피리와 해금의 소리로 곡 제목처럼 호수 위에 떠있는 청아한 달빛이 빛나는 풍경을 표현한다. 조명은 보라색을 사이에 두고 시각과 음의 교차의 묘미를 보여준다. 집중도를 높이며 완벽한 음악 공간을 확보한 뮤지션들은 서로의 영역을 보완해가며 완벽한 앙상블을 이룬다. ‘바람의 합주’에 어울리는 테크닉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연주자들의 고고한 예술정신을 드높인다. 연주는 보랏빛 향기로 흩어지고 그윽한 향에 취하도록 마무리를 이끈다.
8.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바리톤(김재일), 피리(김지윤), 피아노(임연주), 현대무용(정은주)
‘투우사의 노래’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 에서 주인공 돈 호세의 연적이자 스페인 최고의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열광하는 팬들에 둘러싸여 호방한 투우사의 삶을 노래하는 아리아다. 매우 경쾌하면서도 중후한 이 곡은 투우사의 기백을 강하게 나타내는 곡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이러한 투우사의 기백 속에 존재하는 내면의 순수함과 절제를 몸의 움직임으로 함께 표현한다. 피리가 선도하고 피아노, 노래가 따른다. 연주와 노래가 진행되는 가운데 백색의 긴 원피스 차림으로 정은주가 등장하고 선 굵은 독무를 추어낸다. 자신감을 보이며 진지함과 품격으로 풀어낸 춤은 연주와 조화를 이룬다.
나뭇잎이 색깔을 입는 가을날, 겨눔이 아닌 나눔과 어울림으로 격조있는 연주와 춤을 감상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아티스트들은 위대하다. 그들의 작품이 완벽하면 기쁨은 배가된다. 그들은 철새처럼 겨울로 향해 긴 여운을 남기며 떠나 갈 것이지만, 그들이 남긴 ‘빛나가나 반짝이는’ 모습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람의 합주』는 느낌표를 남긴 공연이었다.
[출연진]
김지윤(피리) l 서울대 음악박사, 우리소리연구회 소리 숲 대표
최정현(바이올린) l 서울대 음악박사, 안양대학교 교수
김재일(바리톤) l 서울대 석사, 독일 뒤셀도르프 로버트 슈만음대 졸업
임연주(피아노) l 단국대학교 졸업, 서울 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역임
정은주(안무, 연출) l 단국대 무용학박사, 헤케이브 정은주 컴퍼니 대표
이송현(작곡) l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이강산(해금) l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과정, 동아콩쿠르 금상수상
최승현(드럼) l 한서대 대학원 석사수료, 2014 20‘s ArtFasta 우승
김윤진(무용) l 서울공연예술고 재학
한우열(무용) l 서울공연예술고 재학
이진욱(무용) l 서울공연예술고 재학
정동주(무용) l 서울공연예술고 재학
사진- 이현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