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을 연상케하는 큰 키
에 긴 목하늘이내린 세계정상급 몸매
반복되는 연습이 즐거운 소녀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죠’ 자신만만
정신여중 1년 정은주
“왜 리듬체조를 하냐구요? 재미있자나요.” 정은주. 13살 정신여중 1학년생.
지난 2일 끝난 95종합체조선수권대회 리듬체조서 종합 11위. 종목별 경승서도 볼부분 9위가 은주가 거둔 최고 성적. 그러나 은주는 우승자보다 더 시선을 모았다. 1m65의 키에 몸무게 36kg. 정상인이라면 “거식증환자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마른 몸매다. 별명도 ‘거미다리’에 ‘이쑤시개’. 그러나 은주의 갸냘픈 몸매는 한국 리듬체조의 희망이다.
“은주는 세계무대에 설 것입니다. 은주의 몸 선은 세계 정상급과 겨뤄 뒤질 게 없습니다. 작은 얼굴과 골격, 큰 키에 어울리는 긴 목. 마치 한 마리의 학을 연상케할 정도의 몸 선. 게다가 타고난 끼와 섬뜩할 정도의 열의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은주를 보는 체조인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은주는 그 같은 체조인의 기대를 지난 달 26일 일본 홋카이도서 끝난 95 한일 말레이시아 3개국 국제친선리듬체조대회때 보여줬다. 당당히 개인종합 1위. 당시 일본측 관계자들은 “동양인의 몸매가 아니다. 저런 선수가 한국에 있다니 부럽다”고 입을 모았다.
은주의 하루는 무척 바쁘다. 아침 7시에 일어난다. 욕심을 채우기엔 하루가 너무 짧다. 공부 욕심, 운동욕심, 놀 욕심… 학교를 마치면 오후 3시 40분. 오후 5시 부터 있을 연습때까지가 은주의 자유시간이다. 군것질도 하고 친구들과 ‘원 카드’ 놀이도 하지만 은주에게는 5시가 언제나 기다려진다.
세종고 체육관. 볼을 던진다. 두바퀴 구르고 무릎사이로 공 받기. 발을 뻗고 다리 하나로 버틴다. 땀방울이 온 몸에 흘러도 은주는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바로 이맛이야” 10시가 되어야 연습은 끝난다. 집에 돌아와 학교 과제물을 풀다보면 어느새 11시. 그러나 은주의 날개는 잠자리에서도 접히지 않는다.
“하늘 높이 던진 곤봉에 얻어 맞는 꿈. 늘리기(팔, 다리를 벌려 유연성을 높이는 연습동작)를 하면서 아파하는 꿈. 선발전서 순서를 잊고 엉엉 우는 꿈. 좋은 꿈은 없어요. 맨날 잘못되는 꿈만 꿔요.”
그리고 또 아침 7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지만 은주는 불평 한마디 없다. 너무나 하고싶은 것들이라는 은주는 기쁘기만 하다. 때문에 은주에게는 일요일도 없다. 어머니 김영희씨(46)가 운영하는 잠실의 제일체육관서 은주는 또 난다.
은주는 세종국민학교 3학년 때 리듬체조를 시작하였다. 친구따라 간 리듬체조 교실의 분위기가 은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3년만인 94년 전국대회와 서울 대회서 각각 2연패했다. 국가대표 후보로 발탁된 것도 지난 해였다. 성적보다 뛰어난 몸매와 리듬체조에 대한 집착이 돋보여서였다. 실제로 지난 해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서 은주는 왼쪽 새끼 손가락 골절상을 입고도 전 경기를 마치는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올림픽에 나가 마리아 페트로바(불가리아)같은 대스타들과 겨룰 거에요. 한번 시작했는데 뿌리를 뽑아야지요.” 은주의 꿈은 야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