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2017. 2. 18
헤케이브 소은 컴퍼니 주최, 문화예술기획 소리 숲 주관의 ‘붉은 가면의 진실’이 2월 18일 M극장에서 공연됐다.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안무가이자 현대무용가인 소은 은주의 솔로와 소리연구회 소리 숲 아티스트들의 라이브 연주가 함께 호흡을 맞춘 이번 공연은, 김지윤(피리), 김정수(바이올린), 이수연(피아노)이 연주에 참여했다.
외면으로 가려진 내면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는 ‘붉은 가면의 진실’은 전통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화, 현대무용과 내레이션의 조화가 돋보인 작품이다.
◇ 안무의 디테일 못지않게, 조명의 디테일이 눈에 띈 공연
‘붉은 가면의 진실’이 공연된 M극장은 관객석의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무대를 가진 공연장이다. 동선과 안무의 다양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때, 관객들은 무척 가까운 곳에서 생생하게 그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장소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소은 은주의 안무 못지않게 조명의 디테일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붉은 가면의 진실’은 손이 닿으면 사라지는 조명, 암전 후 밝아질 때 밝기를 달리한 조명 등 민감하게 느낄수록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 무대 연출이 주목됐다.
◇ 욕망·방황·열정의 순서, 시작과 끝이 오버랩된 구성
‘붉은 가면의 진실’은 내 안에 숨은 감정들이 하나, 둘, 셋, 넷 피어나 주인인 나 자신도 제어할 수 없게 되고, 나 자신까지도 삼켜버린 감정을 담고 있다. 나의 내면 감정은 붉은 가면이 돼 나를 뒤덮는데, 가면을 벗은 모습이 진짜인지, 내면에서 나왔기에 가면 자체가 진짜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붉은 가면이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지 찾아가는 여정에 욕망과 방황, 열정이라는 3개의 테마가 나타나는데, 테마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테마의 순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욕망으로 시작했지만 방황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방황이 열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방황 후에 열정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고, 욕망이 열정으로 이어진 것인데 그 사이에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붉은 가면의 진실’을 직접 관람하면 안무와 음악, 내레이션 모두 마지막에 처음 부분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열정이 욕망과 닿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열정이 또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욕망, 방황, 열정이 하나의 링으로 구성돼 있어서 다시 욕망으로 돌아왔다면, 원위치로 복귀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감정은 하나의 시리즈처럼 축적됐다고 볼 수 있다. ‘붉은 가면의 진실’에서 반복을 보여준 마지막에 무대는 약간 변경된 것 또한 그런 이미지와 연결된다.
◇ 하고 싶었던 말을 직접 전한 내레이션
‘붉은 가면의 진실’은 이지현이 대본을 쓴 김지영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바람은 어차피 흩어질 것인데 큰 바람을 모아서 뭘 하겠냐는 등 ‘붉은 가면의 진실’은 하고 싶은 말을 내레이션을 통해 전달한다. “이제 나는 바람의 주인이고, 바람은 나의 주인이 된다. 감정들이 오롯이 내 안에서 춤을 춘다”라는 표현은 무대 위의 안무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든다.
‘붉은 가면의 진실’의 내레이션은 현대무용을 어려워할 수도 있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추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단지 해설에 머물지 않고 무대 위에서 전달하지 못한 메시지의 빈 곳을 채우는 중요한 역할도 수행한다.
‘붉은 가면의 진실’은 안무에 대한 즉석 리뷰이자 모범 답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안무와 음악을 통해서 무대에서 전달했지만, 아티스트들은 내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것인지, 관객들은 제대로 느꼈는지에 대한 무척 궁금해하는데 내레이션을 통해 이런 간극을 좁혔다는 점이 눈에 띈다.
◇ 내면과 외면의 이미지를 안무로 표현한 소은 은주
태초의 대지 위에서 서있는 듯 소은 은주는 맨발로 안무를 펼쳤다. 붉은색 천과 하얀색 천이 크로스 된 세트는 내면과 외면의 이미지를 상징하며, 심플한 조명 또한 ‘붉은 가면의 진실’을 표현하기 위한 내면과 외면의 시공간을 은유적으로 전달한다고 제작진은 밝힌 바 있다.
소은 은주의 옷은 붉은색과 하얀색이 아닌, 붉은색과 검은색이라는 것이 눈에 띄는데, 빠르게 움직이다가 멈추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며 입체감을 보여준다. 무언가 잡아당기려는 팔 동작은 무언가를 만지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잡아당기려는 몸짓, 닿으려는 손길이 인상적이다.
손이 닿으면 사라지는 원형 조명, 넓은 사각 조명 안에서 강렬한 안무 등 소은 은주의 움직임은 가면을 벗으면 민낯이 나올지 또 다른 가면이 새로 나올지 궁금하게 만든다.
◇ 내면과 외면을 표현한 안무, 동서양의 감정을 동시에 전달한 음악
‘붉은 가면의 진실’는 피아노 연주가 먼저 시작해 피리 연주가 그 뒤를 이었다. 음악 비중도 높은 공연이라는 점도 주목됐는데, 연주자들은 관객석을 바라보지 않고, 무용수를 바라봤다. 느낌과 타이밍을 주고받기에 좋은 배치로 여겨진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Op.100, 생상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헨델-할보센 파사칼리아, 그리고 쇼팽 에튀드 이별의 곡 등이 연주됐는데, 음악이 서스펜스를 강화할 때 피아노 소리는 타악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김지윤의 피리 소리는 연주를 피아노,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전체적으로 들으면 국악기 참여했다는 것을 특별히 인지하지 않게 하면서, 피리 소리에 집중해 들으면 내면의 진실이 피리 소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호기심을 자아내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돋보였다.